<기행문> 환장하는 제주도 환상자전거길 종주 - 4

  • 등록 2025.05.22 09: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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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으로 그리고 목포로
김녕성세기해변, 함덕서우봉해변

한민규 기자 |

5월 3일

오늘 달릴 거리는 60여km이다. 오후 3시까지 제주항에 도착해야 오늘 가는 배를 탈 수 있어 일찍 출발했다. 또 미적거리다 여정 중에 어떤 돌발상황이 생기게 되면 시간을 못맞춰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7시가 되기 전에 호텔을 나섰다. 아침 바람은 언제나 상쾌하다. 저 멀리 파란하늘과 푸른바다가 이마를 맞대고 있다. 자전거 패달을 밟다 보니 여러명의 자전거 라이더들이 어떤 식당에서 나와 종주길에 나선다. 이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 있었다. 나도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제주흑돼지덮밥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아침을 든든히 먹은 기분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바람이 드셌다. 그래도 삼다도라서 바람이 그러려니 싶었다. 김녕성세기해변에 도착했다. 오늘 여정의 거의 반 정도 온 것이다. 어제 무리한 여파로 엉덩이가 아프다.

함덕서우봉해변으로 향하는데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진다. 자전거를 탈 때 언덕을 만나면 온 힘을 다해 허벅지가 터지도록 힘들게 정상에 오른다. 그러면 거기에 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리막을 달릴때 느끼는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과 뿌듯함. 이것이 힘들게 올라온 정상에서의 고통을 씻어 주는 보상이다.

 

그런데 맞바람은 패달을 밟아도 밟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힘만 든다. 언덕을 오른 것과 같은 보상은 없고 오로지 앞으로의 전진을 막는다. 자전거길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바다와 야트막한 돌담의 정취, 예쁜 카페,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모를 풀과 새빨간 꽃잎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방’에 갇힌 채 기계적으로 패달을 밟는다. 휘몰아치는 돌개바람에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애써 잡으며... 바람이 얼마나 세던지 이마에서 땀이 흘러 내린다. 자전거 타면서 맞바람 맞으며 이렇게 땀이 흐르는 경험은 처음이다. 그렇게 함덕서우봉해변에 도착했다. 바람이 세서 사진을 찍는데 몸이 흔들려 애를 먹었다.

 

이제 제주항까지 남은 거리는 20여km. 거리는 길지 않지만 맞바람과 엉덩이 통증에 시달려야했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의 방에 갇힌 채 길을 가던 중 눈앞에 고기국수집이 나타났다. 제주도에 왔으면 고기국수는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에 바로 식당에 들어섰다. 우리가 흔히 먹어본 돼지고기 육수에 소면이 들어가 있다. 맛도 예상하는 맛 그대로이다. 가격은 9천원.

 

제주도 물가가 비싸다는 말이 많은데, 내가 먹어본 음식값은 단품이지만 9천원, 1만2천원, 1만3천원이었다. 그리고 숙소는 첫날 묵은 곳이 5만5천원, 어제 잔 곳은 4만5천원 이다. 이 정도 비용이면 대한민국 다른 곳과 비슷하지 않는가.

 

제주 시내에 들어서니 언덕이 나타났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자전거를 끌고 언덕에 올랐다. 그런 내 옆을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이 힘차게 패달을 밟고 언덕에 오른다. 그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힘을 내서 안장에 엉덩일 붙이고 언덕에 올랐다.

 

국립제주박물관을 지나 보림사에 이르니 내리막 길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니 바로 제주항이다. 오후 2시경. 배 타는 수속을 밟기까지 한시간이나 남았다.

이로써 나의 제주도 환상자전거길 종주는 끝이 났다.

 

그런데......목포에서 수원가는 버스를 예약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마를 때렸다. 오늘은 배가 밤 9시에 목포에 도착하기 때문에 버스가 없고, 내일 가는 차편을 예약해야 한다. 휴대전화를 들고 부리나케 내일 목포를 출발해 수원버스터미널에 가는 버스편을 알아봤다. 목포에서 수원가는 버스는 하루에 오전, 오후 2회 있는데, 내일 가는 버스는 오후 것은 만석이고 오전 10시20분에 출발하는 버스는 1석 남아있었다. 20번 좌석. 수원에서 목포가는 버스를 예약할 때는 사무실 컴퓨터에서 순조롭게 했었는데, 휴대전화로 하니 회원가입하고, 또 어쩌구 저쩌구 해야 한단다. 마음은 급하고 손가락은 익숙치 않고, 머리가 뜨거워진다. 휴대전화를 껐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분이 처음부터 다시 해서 하나 남은 20번 좌석을 획득했다. 이제 집에는 갈 수 있게 되었다.

 

아~ 또 다시 그런데.....

오늘 제주를 떠나는 배는 오후 4시30분에 출발해서 밤 9시경에 목포에 도착 예정이다. 수원가는 버스는 내일 아침 10시 20분 출발. 목포에서 하루를 묵어야한다. 목포숙소를 검색하며 배에 타는 수속을 밟는다. 자전거는 먼저 실어놓고 배에 입장했다. 20인실이지만 침대칸이라서 몸을 누일 수 있었다. 계속 휴대전화로 검색을 했다. #이버, #고다, #텔스닷컴, #킹닷컴 등 등 휴대전화로 찾을 수 있는 모든 곳을 뒤졌다. 숙소가 없다. 염병할....

목포에 가서 해결해 보자.

 

뒤숭숭한 마음으로 뒤척이다 보니 목포 도착. 어둠이 짙게 깔린 밤 9시다. 배에서 내린 자전거들이 삼삼오오 모였다가 뿔뿔이 다 사라지고 나만 홀로 목포 삼학부두여객터미널에 남았다. 목포역 주변에 가면 잠잘만한 뭐라도 있겠거니 하고 목포역을 향해 달렸다. 목포역 주변에는 식당들도 문을 닫았고 거리에 썰렁한 검은 그림자만 남았다. 목포역에서 뒷골목으로 들어가니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작은 골목앞에 서 있다. 골목안을 보니 여인숙이다. 아주머니에게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날 위해 방을 하나 빼놨다고 한다. 어두운 뒷골목에서도 작은 길로 20m를 더 들어가 있는 여인숙, 거기서도 1층 맨 끝에 있는 막다른 방이 오늘 내가 몸을 쉴 방이다. 늦은 저녁을 먹으려 하니 인근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이다. 오늘도 저녁은 편의점 컵우동에 맥주 한잔이다.

이렇게 기나긴 하루가 지났다.

 

한민규 기자 newsongg@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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