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규 기자 |
2025년도 구상솟대문학상을 수상한 서성윤 시인을 시인이 근무하는 화성동탄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만났다. 오산천 옆 수풀이 우거지고 노을이 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무실은 쾌적했다.
서 시인과의 인터뷰는 몇일 전에 하려고 했으나 엉덩이와 무릎에 욕창이 나서 미뤄져 진행되었다.
서 시인은 20세에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장애를 갖고 2015년까지 고향인 화성시 양감면에 있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다가 같은 해 화성동부장애인 자립생활지원센터를 통해 자립하게 되었다. 보통 중증장애인은 부모님의 품을 떠나서 자립하기 어렵다. 서 시인은 운(?) 좋게 자립하게 되었다고 밝혔으나, 정부 정책과 지자체의 지원이 중증장애인의 자립에 밑바탕이 되었다.
현재 서 시인은 화성동탄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일하고 있으며, 장애인 차별상담, 직장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국내 유일의 장애인 문학상인 구상솟대문학상을 수상한 서 시인의 문학세계로 들어가 보자.

▲ 구상솟대문학상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상인가요?
- 장애인 문인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 가슴속에 품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구상솟대문학상’입니다. 저에겐 단순한 수상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입니다. 이 상은 저에게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이라는 조용하고 단단한 허락이었습니다.
▲ 시를 쓰기 시작한 계기와 언제부터 쓰셨는지요?
-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후, 재활병원에서 2년을 보내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마우스스틱을 입에 물고 키보드를 한 자 한 자 눌러가며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저의 존재를 붙들기 위한 절박한 기록이었습니다.

▲ 가장 좋아하거나 닮고 싶은 시인과 그 이유는?
-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쳐주신 이문재 시인님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시인의 시에는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리듬과 일상을 꿰뚫는 서늘한 사유가 동시에 흐릅니다. 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의 결까지 흔들리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저는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삶의 진실한 결을 쓰다듬는 말, 사람을 붙잡는 말,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말 말입니다.
▲ 시인이 가장 좋아하거나 의미 있게 여기는 시와 그 이유는?
- 저는 마경덕 시인의 「신발론」을 깊이 사랑합니다.
이 시가 상실의 고통을 ‘한 몸을 잃은 외로운 영혼’에 비유한 표현은, 제 마음에 오래도록 잔향을 남깁니다.
신발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또 하나의 몸이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공동의 대상이자, 삶을 지탱하는 짝으로서 신발은 존재합니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신발을 신고 싶다.”는 마지막 구절은, 삶을 향한 간절한 의지를 드러내는 고백처럼 읽힙니다.
이러한 시의 감각은 저의 사고방식, 그리고 창작의 태도와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시는 언어로 된 신발이며, 언어로 만든 몸이기도 합니다.
▲ 시인이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무엇인가요?
- 제 시는 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온몸으로 겪고,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쓰는 시. 그러니 저에게 시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실존의 확장이자 치유의 언어입니다. 저는 ‘아름다운 시’보다 ‘필요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에 손을 얹고, 침묵한 존재에게 목소리를 건네며, 무너진 자리에 다시 뿌리 내리게 하는 언어를 쓰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제 시가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에 위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시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이번 수상을 통해 시집을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사실 제게 시집은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접어둔 작은 바람이었습니다. 꼭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은 없었지만, 언젠가 저만의 목소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시를 오래 쓰고 싶습니다.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저 역시 숱한 유혹과 의심 속에서 흔들렸지만, 2010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앞으로 20년 이후에도, 제가 쓸 수 있다면 꾸준히 쓰고 싶습니다. 그게 제 삶의 방식이고, 제 언어의 신념입니다.
▲ 장애를 갖기 전 하고 싶었던 일이나 꿈은 무엇이었나요?
- 스무 살, 대학에서 환경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생태와 삶의 순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통사고 이후 그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몸은 멈췄지만, 생각은 더욱 깊어졌고 감각은 더욱 예민해졌습니다. 지금은 동료상담가로 활동하며 장애인권, 장애예술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환경이라는 키워드는 사라졌지만, 생명을 향한 애정은 여전히 제 삶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 마지막으로 시인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저의 글쓰기 인생을 돌아보면, 언제나 ‘혼자 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 손길, 온기 덕분이었습니다. 수원새벽빛장애인야학에서 함께 시를 배우고 고민하던 문우들, 신승우 교장선생님과 황은주, 이도훈, 박설희 선생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곁을 지켜주시며 사랑으로 품어주신 저희 어머니. 오늘의 이 기쁨은 가장 먼저 어머니께 바치고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제 삶에서 길어 올린 언어를, 다시 삶을 살리는 말로 빚어내겠습니다. 몸은 자유롭지 않지만, 저의 언어만큼은 어디든 흐르고,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도록 살겠습니다
■에필로그
꿈을 이룬 사람 서성윤
자가용 자동차를 갖는 것은 장애인들의 꿈
문학에 입문하면서 가졌던 꿈
서 시인은 현재 마우스스틱으로 글을 쓰지 않고 헤드마우스로 글을 쓰고 있다. 과학의 진보가 부족하지만 위생과 편리함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리고 서 시인은 10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강의하고 돈을 끌어모아서 카니발 자동차를 구입했다.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면 출퇴근 시간이나 야간, 주말 휴일 때 길면 3시간, 4시간씩 기다리는 불편과 시간이 아까워서 구입한 것이다. 자가용 자동차를 갖는 것은 장애인들의 꿈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서 시인의 솟대문학상 도전은 사전오기 끝에 수상하게 된 것이다. 시인이 문학에 입문하면서 가졌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서 시인은 벌써 인생을 살면서 두가지 꿈을 이뤘다. 전신마비장애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가용 자동차를 갖는 꿈을 이뤄냈으며, 평생의 동반자이자 숙명인 문학을 하면서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우리 중에 꿈을 성취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꿈은 이루어진다지만 어린 시절의 꿈이 살며 닳아 없어지고, 현실에 찌들어 뭉게구름처럼 어울렁 더울렁 사라져 버려 꿈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사는게 세상사 아닌가.
서 시인은 인터뷰 내내 그의 작품은 언제나 현실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의미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세 번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서 시인의 모습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그가 이제 무엇을 이뤄낼지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시인의 약력/학력
경기 화성 1981년 출생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수원새벽빛장애인야간학교 시문학창작반‘랑’회원
수상이력
2025 제35회 구상솟대문학상 수상
2021 상반기 수원시 버스정류장 인문학글판 창작글 장려 ‘주름에게’
2020 제30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단편소설 가작 ‘착각이라도 만끽할래’
2020 광주장애인종합지원센터 장애인식개선수기공모전 입선
2020 제11회 경기도장애인문예미술사진공모전 문예부문 최우수 ‘행복의 상대성이론’
2020 제15회 고양시 일산복지관 전국장애인문학제 운문 가작 ‘로데오거리에서’
2018 제28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운문 최우수상 ‘헐다’
2018 장애인고용안정협회 장애인고용인식개선을 위한 Talent contest 운문 입선 ‘무감각시대’
2017 장애인고용안정협회 장애인 고용 식개선을 위한 Talent contest 운문 가작 ‘벚꽃엔진’
2016 한국산문 신인상
2016 제2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주최_방이복지관 수필 대상 ‘다시 꽃은 피고’
2015 제1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주최_방이복지관 수필 은상 ‘백양리 가는 길’
2015 경기도장애인인권문학상 대상
2015 수도권 뇌병변장애인인권대회 인권문학상
2014 제5회 경기도 장애인문예미술사진공모전 문예부문 대상 ‘두 번째 손’
2014 제24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운문 가작 ‘그린라이트’
2010 정보통신보조기기 이용수기 공모전 장려 한국보조기기산업협회장상
저서
•공저 2023 제33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역대 수상작 창작 작품집 2018-2022 수상자 미발표작 및 수상작 모음
•공저 2023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역대 수상작 문학전집 '구름이 전해주는 말‘
•공저 2022 우리동네평생교육학교 문학반 학습발표회 공동문집
•공저 2021 상하반기 버스정류장 인문학글판 수상작품집
•공저 2020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작품집 『까망』
•공저 2018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작품집 『가슴에 돋는 못』
•공저 2018 수원새벽빛장애인야간학교 시문학반 “랑” 『새벽엔 너도 푸르다』
•공저 2014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캔클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