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규 기자 |
기록적인 무더위에 밤낮으로 시달리며 여름을 보내고 있다. 올 여름이 기상관측 사상 최고로 덥다고 야단인데, 기후위기로 앞으로 다가올 여름에 비하면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도 한다. 앞으로 다가올 여름은 어떻게 버텨야 하는가.
덥다 덥다 해도 계절은 언제나처럼 지나 가을이 훌쩍 다가와 있다. 이제 추석도 얼마남지 않았다.
더위가 물러갈 무렵, 주말에 가족과 연인과 함께 손잡고 가기 좋은 곳이 있다. 바로 화성행궁이다.
화성행궁이 주말에 야간개장을 하고 있다. 오는 10월 27일까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에, 저녁 6시부터 밤 9시30분까지 <깊은 밤, 달빛을 즐기는 궁궐잔치(宴亭)>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화성행궁의 밤을 감상할 수 있다.
<화성행궁의 건설과 의의>

화성행궁은 수원시 팔달산 아래 있는 정조임금이 만든 궁궐이자 행정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왕이 지방에 나가 머무는 행궁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매봉산에서 수원부 읍치가 있던 화산 일대(현재 화성시 안녕동)로 옮기며 현릉원을 조성했다. 따라서 화성행궁은 수원부 신읍치의 관아 역할과 왕이 현릉원 행차때 머무는 행궁으로 건설되었다. 그리고 정조는 세자가 15세가 되면 왕위를 내려놓고 상왕으로 물러나 화성행궁에 기거하며 백성들과 함께 하고자 했었다.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부터 1792년(정조 16년)까지 신축되었다. 그리고 1793년(정조 17년) 수원부가 화성유수부로 승격되면서 1794년(정조 18년)부터 1796년(정조 20년)까지 증·개축되어 총 576칸으로 완성되었다. 초대 화성유수에 영의정 채제공을 임명할 정도로 정조는 화성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화성유수는 장용외사와 행궁정리사를 겸하고 있어 지방행정의 수장이자 군사지휘권과 화성행궁공관장을 겸하는 요직이었다.
정조는 재임중에 총 13회에 걸쳐 화성행궁에 행차했는데,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개최했던 을묘년 원행이 가장 유명하다. 이 원행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는 사미행사, 군사훈련, 문무과 시험 등 많은 행사가 이뤄졌다. 또한 이때 8일간 화성행궁에서 벌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과정과 여러 행사를 전부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가 남아있어 당시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화성행궁은 정조 이후에도 순조와 헌종, 철종, 고종 등 후세 국왕들이 여러 번 행차하는 등 조선 말까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제에 의한 화성행궁 파괴>
조선의 행궁 중에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화성행궁은 1910년 일제 강점기에 철저히 훼손되었다.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과 ‘조선읍성철거시행령’으로 전국 약 300여 곳의 읍성이 철거될 때 화성행궁도 파괴되었다.
일제는 1910년 봉수당에 자혜의원을 설립하였고, 1913년 수원경찰서가 북군영 자리에 설치되었으며, 이듬해 낙담헌을 개조하여 수원군청으로 사용했다. 1920년에는 우화관 자리에 수원공립보통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1923년에는 봉수당을 헐고 자혜의원을 대규모 증축하였다. 이 자혜의원이 훗날 경기도립 수원의원으로 개칭된다. 이렇듯 일제 강점기에 낙남헌을 제외한 대부분의 화성행궁 시설물이 파괴되었다.



<화성행궁의 복원을 심재덕과 함께 해낸 사람들>
화성행궁의 복원은 심재덕(1939~2009)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심재덕은 1987년 제12대 수원문화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당시 ‘수원성’으로 불리던 화성과 화성행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1989년 4월 심재덕은 향토사학자 이승언에게 화성행궁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달라고 요청을 했고, 이승언은 5월에 <화성행궁도> 사진과 관련 자료를 찾았다. 이를 통해 심재덕은 화성행궁 복원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화성행궁의 복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화성행궁 자리에는 경기도 수원의료원, 수원경찰서, 수원우체국, 여성회관, 신풍초등학교 등이 있는 수원의 중심부였기 때문이다.
심재덕만이 강한 의지와 신념으로 화성행궁 복원을 추진해 갔다.
화성행궁의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 때 꼭 복원을 해야한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 1989년 10월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가 창립하였다.
추진위원회 위원장에 김동휘, 부위원장 홍의선, 안익승, 심재덕, 이사에 이종학, 김동욱, 김학두, 리제재, 송태옥, 이상봉, 이완선, 이호정, 조웅호, 최홍규와 감사에 이근환, 정규호가 선임되었다. 그리고 추진본부장 이홍구와 기획부장 임병호, 총무부장 송철호, 사료편찬부장 이승언, 섭외부장 김상용, 홍보부장 김우영과 각계를 대표하는 추진위원 81명이었다.
추진위윈회가 창립하고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화성행궁 한가운데에 있는 경기도립 수원의료원이 증개축에 대한 설계가 모두 끝난 상태인 것이다. 화성행궁 자리에 수원의료원을 증개축하는 사업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다. 수원의료원이 계획대로 증개축된다면 화성행궁의 복원은 영원히 물건너 가게 되는 실정이었다.

1989년 6월 추진위원회는 김동휘 위원장과 심재덕 문화원장, 이종학 서지학자, 안익승 경기도유네스코 회장, 이승언 향토사학자 등과 불시에 경기도지사실을 방문하여 당시 도지사였던 임사빈 지사와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추진위원들은 “일제에 의해 파괴된 화성행궁에 수원의료원을 증축하게 되면 영원히 행궁 복원을 할 수 없다”며 “수원의료원 증축을 철회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야기를 들은 임사빈 지사는 담당자를 불러 수원의료원 증개축 계획을 유보시키고, 차후 연초제조창 옆으로 이전하도록 지시했다. 훗날 임사빈 지사의 이 결정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로써 화성행궁 복원의 큰 산을 넘은 것이다.
추진위원회는 1989년 12월 화성행궁 복원을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화성행궁지 일대를 사적지로 지정할 것 ▲행궁지 안에 있는 공공기관 이전 ▲행궁과 수원천을 옛 모습대로 보존할 행정시책 수립을 건의하였다.
추진위원회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수원의료원이 이전하고 1993년 화성행궁 복원이 수원시정의 중점시책으로 선정되어 화성행궁복원종합장기계획이 수립되었다. 또한 12월 행궁복원을 위한 시민설명회를 개최했으며,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가 발족되었다.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는 민관 합동으로 재정비되어 위원장에 심재덕, 부위원장 김동욱, 안익승, 위원에 조정환, 김용규, 유재언, 최봉수, 송후석, 남우철, 김주태, 김동휘, 이상해, 박언곤, 윤규섭, 이제재, 임택명, 이종학으로 출범했다.
이후 심재덕이 1995년 민선1기 수원시장으로 당선되어 수원시 행정의 수장이 되면서 화성행궁 복원은 탄력을 받아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1995년 화성행궁지가 경기도 기념물 65호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 드디어 화성행궁 복원사업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2002년 482칸의 화성행궁 1차 복원사업이 완료되었다. 이듬해인 2003년 화성행궁 개관식을 갖고 시민들에게 공개되었고, 2007년 화성행궁이 기념물에서 사적으로 격상되어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었다.
2013년 신풍초등학교가 광교신도시로 이전하고 2016년 분교의 마지막 학생이 졸업한 이후 본격적인 2단계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올해 4월 우화관과 별주를 복원하며, 1989년부터 35년간의 치열하고 뜨거웠던 기나긴 복원사업이 마무리되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달빛화담>
한낮의 뜨거운 기운이 아침 저녁으로 가을 기운에 밀려나는 계절에, 정조의 꿈과 효심이 깃든 화성행궁의 밤을 낭만과 추억으로 물들이는 달빛화담(花談).
지금 우리가 보고 거니는 화성행궁의 지난 세월의 풍파를 기억하고 돌아본다면 기와 한 장, 창문 하나 모두 소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화성행궁을 건설한 위대한 왕 정조의 이상이 눈에 보이고, 일제에 의해 파괴된 화성행궁을 복원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한 사람들의 순수한 땀방울이 달빛에 맺혀진다.
그 무엇도 그냥 되는 것은 없다. 어떤 일이 이뤄지려면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이 있고,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 옆에서 응원하는 사람, 또 그 일을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물론 장애물이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시대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씨줄 날줄로 엮여 하나의 역사가 쓰여지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일까.
어둠이 내리는 매향교 다리 위를 스치듯 타고 올라온, 바람이 미로한정을 향해 흐른다.
▲화성행궁 야간개장(2024.05.03~10.27)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공휴일 및 추석연휴 포함)
18:00~21:30(21시 입장마감)
문의 수원문화재단(031-290-3612)
▲함께 가볼만한 곳
- 행궁동 카페거리
- 행궁동 공방거리
- 수원 통닭거리
- 수원 전통시장
*참고자료
<심재덕 평전> (사)미스터토일렛 심재덕기념사업회
<세계유산 수원화성> 수원화성박물관
<수원의 궁궐 화성행궁> 수원화성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