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규 기자 | 기록적인 무더위에 밤낮으로 시달리며 여름을 보내고 있다. 올 여름이 기상관측 사상 최고로 덥다고 야단인데, 기후위기로 앞으로 다가올 여름에 비하면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도 한다. 앞으로 다가올 여름은 어떻게 버텨야 하는가. 덥다 덥다 해도 계절은 언제나처럼 지나 가을이 훌쩍 다가와 있다. 이제 추석도 얼마남지 않았다. 더위가 물러갈 무렵, 주말에 가족과 연인과 함께 손잡고 가기 좋은 곳이 있다. 바로 화성행궁이다. 화성행궁이 주말에 야간개장을 하고 있다. 오는 10월 27일까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에, 저녁 6시부터 밤 9시30분까지 <깊은 밤, 달빛을 즐기는 궁궐잔치(宴亭)>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화성행궁의 밤을 감상할 수 있다. <화성행궁의 건설과 의의> 화성행궁은 수원시 팔달산 아래 있는 정조임금이 만든 궁궐이자 행정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왕이 지방에 나가 머무는 행궁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매봉산에서 수원부 읍치가 있던 화산 일대(현재 화성시 안녕동)로 옮기며 현릉원을 조성했다. 따라서 화성행궁은 수원부 신읍치의 관아 역할과 왕이 현릉원 행차때 머무는
한민규 기자 | 수원화성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은 정조의 수원화성 신도시 건설에 담긴 애민사상과 개혁정신을 간직하고 있다. 수원화성박물관에는 수원화성 축성과 신도시 발전과정을 볼 수 있는 <화성축성실>과 1795년 을묘년 수원행차와 정조의 충신 채제공, 수원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영과 방어체계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화성문화실>이 상설전시 되어 있다. 그리고 기획전시실에서는 화성과 정조시대 등 조선시대 관련한 전시가 꾸준히 기획되고 있다. 또한 야외전시로 박물관 밖에 거중기와 녹로 등 수원화성 축성에 사용된 기기들을 실물 크기로 전시하고 있다. <화성축성실> 화성축성실은 수원화성 축성과 신도시를 건설한 정조와 선왕인 영조, 생부인 사도세자 관련 유물을 소개하고, 수원화성 축성 과정과 방법, 물자의 조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애정어린 글을 보낸 문집도 있어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영우원 표석탁본도 눈길을 끈다. 탁본의 상태가 너무나 깨끗해 레이져로 조각한 것처럼 깔끔하다. 정조가 아버지의 표석 하나도 최고로 만든 정
한민규 기자 | 지난 4월 24일 화성행궁에서 우화관(于華觀)과 별주(別廚)가 복원되어 개관식을 가졌다. 우화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였으며, 별주는 국왕 행차시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고 관련된 문서를 보관하는 장소이다. 이로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훼손되고 파괴되었던 수원 화성행궁이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화성행궁은 조선 22대 국왕인 정조가 1789년(정조 13년) 10월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묘를 수원부 읍치 자리(현재 화성시 화산동)로 이장하고 신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옯기면서 건립되었다.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쓰이다가 국왕이 행차하는 특별한 날이면 궁실로 이용되었다. <조선후기 개혁정치와 왕권강화로 조선의 부흥을 이끈 왕, 정조>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와 더불어 조선후기 개혁정치와 왕권강화로 조선의 부흥을 이끈 왕이다. 장용영을 두어 왕권을 강화했고, 규장각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했다. 실학자와 서얼 출신의 학자들도 채용되었는데 주요 인물은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그리고 서이수 같은 사람들이다. 또한 초계문신 제도를 두어 젊은 인재를 발탁했다. 이렇게 발탁된 대표적인 초계문신이 정약용, 정약전 형제와 채제공의 아들 채홍원 등
한민규 기자 | 27일 공자 탄신 2575주년을 맞이하여 오산에 있는 화성궐리사에서 춘기 석전제향이 거행되었다. 보통 석전대제는 음력으로 2월과 8월 첫번째 정(丁)일에 공자의 뜻과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치뤄지는 연례행사인데, 화성궐리사의 석전제향은 공자의 탄신일(음력 8월27일)과 돌아가신 기일(음력 2월 18일)에 지내는 것이 독특하다. 이번 춘기 석전제향에는 1백여명의 지역 유림과 시민들이 참석했다. 궐리사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우리나라에는 논산에 노성궐리사가 있고 오산에 화성궐리사가 있다. 노성궐리사는 그 지역 유생들이 만든 사립 궐리사이다. 화성궐리사는 조선시대 정조임금이 수원에 화성행궁을 짓고, 오산 궐리에 공자의 후손들이 살고 있어, 공자의 정신과 학문을 계승하고자 궐리사를 만들었다. 그래서 화성궐리사는 공립 궐리사의 성격을 갖고 있다. 궐리사 조성 당시 수원부에 속해 있어 '수원궐리사'라고 명명되어야 했으나 정조임금이 화성행궁을 완성하고 수원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며 궐리사의 이름이 <화성궐리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