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규 기자 |
5월 4일 그리고
아침에 목포역 인근에서 유명한 해장국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버스타고 잘 돌아왔다. 자전거를 무리하게 탄 여파로 엉덩이에서 진물이 나고 몸무게가 4kg 빠졌다. 이번 여행이 준 작은 상처다.
정신없이 달리고, 검색하고, 예약하고, 편의점 음식 순례하고.... 이번 여행에서 한 일이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나는 제주도에서 맛집 검색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제주도에 사는 지인들에게 전화 한번 못했다.
이렇게 일정이 빡빡해진 연유는 제주도에서 나오는 배편의 문제도 있었지만 자꾸 집에서 전화가 왔다. 별거 아닌 일과 연휴 뒤에 처리해도 되는 걸로 계속 전화가 오는 것이다. 마음이 불편해서 마냥 즐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1차 목표인 제주도 자전거환상종주만을 마치고 올라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매년 8월 첫주가 대한민국 휴가의 정점이었다. 지금처럼 연월차 휴가가 없던 시절이라서 이때 휴가를 가지 않으면 여행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전국의 유명 휴가지는 수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때였다. 우리도 이때 휴가를 갔다. 목적지를 정하고 차로 가다가 경치좋은 바닷가나 계곡이 나타나면 발담그고 놀았고, 피곤하면 앞에 보이는 모텔에서 쉬었다. 그렇게 해남을 갔었고, 통영, 여수 등도 갔었다.
이후 혼자 여행을 다닐 때도 목적지만 정하고 식당이나 숙소는 발길 닿는 데로 해결했었다.
몇년 전 딸래미가 영국 여행을 준비하는데, 가고 오는 비행기편이야 당연히 예약을 해야 되지만, 영국에서 숙소는 물론 기차표, 박물관까지 예매하며 하루하루 일정을 빼곡히 채우는 것이었다. 옆에서 그걸 보고 여행은 의외성도 있고, 돌발상황도 있을 수 있는데 너무 타이트하게 계획을 짜는게 아니냐고 하자 딸래미는 ‘뭔 소리야’하는 표정으로 도리어 의아하게 바라봤었다.
오늘 가는 데까지 가보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이게 여행 아닌가.
여행은 반복적인 일상에서의 탈출이며 여유와 낭만이 깃든 휴식인데, 여행마저 꽉 짜인 일상처럼 밀어붙이는 게 맞는 것일까.
오늘도 낭만을 얘기하며 여행계획을 빡빡하게 짜지 못하는 나는 이제, 시대와 불화하는가.